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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썰/결혼 & 부부

결혼생활을 이어나가기 보다는 이혼이 좋겠네요 - 네이트판 레전드





결혼생활을 이어나가기 보다는 이혼이 좋겠네요 - 네이트판 레전드 

결혼한 지 아직 2년도 채 안됐어요. 
결혼도 이혼도 되게 무거운 말들이었는데, 
신중해야 하는 것 알고 있는데 요즘 지쳐서 
그런지 그냥 스트레스받을 때마다 
이혼할까? 이혼할까? 이 생각밖에 안 들어요. 

우울증이라도 온 건지, 
집에만 들어오면 무기력하고 하네요. 

딱히 싸운 일이라던가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던가 하는
특정한 사건이 있지는 않아요. 

맞벌이 부부고, 같은 직종이라 
서로 일적으로 생기는 트러블도 
없고 아직 아이도 없습니다. 

처음 신경 쓰이기 시작한 건 
집안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연애기간 짧지 않았고, 저보다 훨씬 
오랫동안 자취 경력도 있는 남편인데다가 
연애하면서도 목소리 높여 싸워본 적이 
없어서 같이 사는 거에 대해 별 걱정이 없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집안일은 
내가 다 하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저는 그냥 빨래통에 빨래가 쌓였다 
싶으면 세탁기 돌리고 쓰레기봉투 찼다 
하면 묶어다가 버리고 설거지 쌓여있으면 
하고 그런 성격입니다. 

꼭 내가 설거지할 테니 네가 세탁기 
돌려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분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같이 사는 집이고 융통성 있게 살고 싶었습니다. 


반면 남편은 하라고 말해주지 않으면 안 해요. 
쓰레기가 차있으면 기어코 그 위에 
쓰레기 하나 더 얹고, 설거지 안 해서 
물 마실 컵이 없으면 컵 하나만 빼다가 
물로 헹군 뒤에 물 마십니다. 

제가 시키면 하긴 해요. 
근데 집안일하는 거는 당연한 건데 
걸 뭔가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상이라는 게 꼭 저한테 
뭔가를 받아내는 게 아니라 예를 들면
 
'대청소를 했고 나는 수고했으니 
그 대가로 사고 싶었던 신발을 산다' 
뭐 이런 마인드가 잡혀있습니다. 

제가 뭐 해달라고 시키지 
않으면 먼저 안 합니다.
 
물론 시키면 군말 없이 하긴 하는데 
저는 애초에 왜 제가 그걸 '지시'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가끔 집안일을 나만 너무 하는 것 
같아 하나하나 시키면 그걸 잔소리로 여깁니다. 

잔소리처럼 느껴지니 하면서도 
구시렁대고, 제가 본인한테 뭘 자꾸 
시켜서 기분 나쁘다는 게 말투에서부터 
드러납니다. 저는 그거에 스트레스받고요. 

또 분명 같은 금액 들고 결혼했고 
결혼에 있어 필요한 모든 것들, 
결혼식장, 혼수, 신혼집, 신혼여행 등등을 
반반했는데 제가 여자란 이유로 뭔가 
좀 더 희생해야 한다는 개념이 
바탕으로 깔려있었나 봅니다. 

요리하는 거 제가 다 합니다. 

그럼 같이 일하고 와서 피곤한데 
제가 요리하면 알아서 집안일을 한다던지 
설거지를 한다던지 할 수 있잖아요? 

시키면 하지만 아무 말도 안 하면 
해야 한다는 생각을 아예 안 합니다. 

말로는 자긴 여자라고 어쩌고 
그런 거 싫다, 평등해야 한다 하지만 
은근히 여자가 집안일을 해야 한다는 
편견이 깔려있습니다. 

아보니 알겠더군요. 


친구들에게 고민거리를 털어놓으면 
대부분이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다, 
여우처럼 잘 구슬려서 살살 꾀어봐라 
하던데 저는 그것도 이해가 안 가요. 

뭐 칭찬을 많이 해주고 과장해서 
고맙다고 해주면 남편이 기분이 
좋아서 잘할 거다.  

애를 키우는 것도 아니고 
동등한 입장인데 왜 제가 남편을 
구슬려야 하는지, 왜 쓰레기를 버리도록 
꾀어 야 하는지 어이가 없네요. 

문득 깨닫고 나자 남편의 행동 
하나하나가 스트레스가 되기 시작했어요. 

시댁 가면 당연스럽게 티브이 앞에 
앉는 남편, 내가 주방에 들어가서 음식 
준비하는 걸 당연스럽기 여기는 남편. 

그래놓고 밥 먹으면서 제 밥그릇에 
반찬 덜어주면서 나만 한 남편 어딨냐고 
시부모님들 앞에서 제게 재롱부리고 

시어머니는 우리 아들만큼 자상한 
남자 없다며 뿌듯해하십니다. 

남편이요, 자기는 되게 잘하는 줄 알아요. 
기념일 잘 챙기고 계속 신혼처럼 살자고
 연애할 때처럼 데이트도 많이 하고 그래요.

싸우는 일도 거의 없으니 남편은 
제가 스트레스를 받는지 잘 모릅니다. 
그냥 자기도 모르게, 당연하게 집안일을 
여자인 저한테 맡기는 것 같아요. 

저는 그냥 놓아버리고 싶어요. 
너무 무기력합니다. 남편이 지금까지 
당연하게 갖고 있던 집안일에 대한 습관들을 
뜯어고칠 힘이 없는 것 같아요. 

저렇게 당연하게 여자인 나에게 살림을 
의지하는데 과연 내가 화내고 짜증 내고 
뒤엎는다고 바뀔까? 하는 마음이 들고, 

그러다 보니 문득문득 그냥 이혼해서 
혼자 살고 싶다 하는 마음이 너무도 쉽게 들어요. 

이게 우울증일까요? 제가 너무 
쉽게 이혼을 생각하나요? 

그냥 혼자 살던 편하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 극단적인 결론을 
자꾸 내리려고 하는 것 같아요. 

결혼생활하시던 분들 혹시 
저랑 비슷한 분들 없으신가요?ㅠㅠ 
조언 부탁드립니다.

이러다가 정신과라도 갈 거 같아요.

스스로 우울증 초기라고 생각했기에 
다 잊고 신나게 놀자고 자취하는 
친구네 찾아간 건데 현관 앞에서부터 
제가 이미 울고 있더라고요. 

정신과도 갔다 왔습니다. 
평생 처음 가는 곳이었는데 
치료라기보다는 상담을 받고 온 기분이더라고요. 

글을 썼던 때에는 정말 우울했는데 
많이 차분해지고 냉정해졌습니다. 

남편한테 말했습니다. 
이혼하고 싶다고요. 
댓글 달아주신 분들 대부분 
두 쪽으로 나뉘더라고요.  

한 번만 더 시도해보고 이혼해라, 애
 생기기 전에 이혼해라 이렇게요. 

제가 좀 두서없이 적었지만 
남편과 대화가 아예 없던 게 아닙니다. 

난 일도 하고 집안일도 내가 하려니 힘들다, 
네가 도와줬으면 좋겠다. 내가 밥을 하고 있으면 
넌 쓰레기라도 버리는 성의를 보여주면 안 되겠냐, 

말 힘들다 이런 말은 많이 했는데 
제가 남편에게 이혼이라는 극단적인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 남편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나 봅니다. 

정신과 상담받고 친구와도 
얘기하고 나서 좀 냉정해진 
머리로 가만히 생각해보니, 

결혼 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게 전혀
 이기적인 선택이 아닌 것 같더라고요.

늘 혼자서 그때가 좋았지 생각만 했는데 
냥 편했던 그때로 돌아가려고요. 

부모님 많이 충격받으시겠죠. 친구들, 
직장동료들에게 말하는 것도 일이겠죠. 

사실 순탄한 이혼이
가능할 것 같지도 않습니다. 
남편이 길길이 뛰었거든요. 

사실 남편이 정말 미안해 내가 잘할게 이런 
태도로 나왔다면 한발 물러섰을 텐데, 

제가 진지하게 지금까지의 스트레스를 
말하며 이혼 생각까지 한다고 말을 
꺼냈을 때 남편의 반응은 
'너 갑자기 왜 그래 미쳤어?' 더군요. 

어떤 분이 댓글에 남겨주셨었는데, 
남자들은 바람 안 피우고 도박 안 하면 
자기가 최고의 신랑감인 줄 안다고. 
소름 돋게도 제 남편이 
그 말을 제게 하더라고요. 

내가 바람을 피웠냐, 
어디 가서 재산 걸고 도박을 했냐. 
나 스스로 훌륭한 남편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요.  

제가 집안일로 스트레스받는 얘기를 
꺼내니 이혼이 장난이냐, 
그런 걸로 훅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넌 일단 진정을 해야 한다 
너무 감정적이라고 했습니다. 

차라리 남편이랑 소리 지르며 
싸우면 후련했을까요? 

화도 안 나던데요. 오히려 
그 말을 들으니 왔다 갔다 했던 
마음에 확신이 섰습니다. 

더 이상 제 삶을 희생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엄마랑 밖에서 만나 전부 얘기했습니다. 
엄마가 엄청 말리실 줄 알았는데 
네 판단에 맡긴다고 하시더라고요. 

결혼생활 말할 때는 그렇게 차분하더니 
엄마의 널 믿는다는 한마디에 
카페에서 엉엉 울었습니다.  

친구들 앞에서는 쿨한척했는데 
저 사실 하나도 쿨하지가 않습니다. 

손도 떨리고 
멍했다가 슬펐다가 정신없다가...
정신과는 한번 더 가기로 했고, 와중에도 
악착같이 직장 잘 다니고 있습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우울증도 이겨내고 
정보를 긁어모아야겠어요. 

익명의 공간이지만 
제게 공감해주신 많은 분들, 
조언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