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우리언니도 말랑한 여자였네요 - 네이트판 레전드
우선 방탈 죄송해요.
저는 22살 언니를 둔 20살 여자예요.
저는 대학생이고 언니는 얼마 전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잠시 쉬고 있어요.
저는 시험기간이라서 요즘 하지도 않는
공부에 찌들어있는데 어제 언니가 맛있는 거
사주겠다고 해서 같이 나갔다가
집에 오는 길에 버스를 탔어요.
저희 집이 좀 외곽이기도 하고,
번화가에서 많이 떨어진 곳인데다가
시간도 되게 애매해서 버스에 사람이
없었는데 중간에 할머니 한 분이 타시더라고요.
할머니가 타기 전에 버스기사 아저씨께
영가는 버스 맞냐고 물어보셨는데 아저씨가
짜증 내시면서 앞에 버젓이 쓰여있는데
물어본다고 맞으니까 빨리 타시라고 하셨어요.
저희는 어릴 때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할머니 손에서 큰 탓에 평소에도 할머니
할아버지 분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어떻게 보면 좀 과민반응이라
해야 하나 그런 게 있어요.
그래서 저 때부터 언니랑 저는
표정이 안 좋아졌고 못 보셨을 수도
있는 거고 할머니께서 혹시나
한글을 모르시거나 시력이
안 좋으실 수도 있는건데 짜증을
내시니 마음이 좀 안 좋았어요.
할머니가 버스 계단을 오르실 때도
좀 천천히 타셨는데 기사 아저씨가
계속 구시렁거리셨어요.
저희는 중간 쪽에 앉아있었고 할머니는
버스기사 아저씨 바로 뒤에 앉으셨는데
아저씨가 중간에 신호 때문에 차가
정차했을 때 노인분들은 앞에 타면
위험하니 뒤쪽으로 가시라고
불친절한 말투로 말씀하셨어요.
그래도 할머니를 걱정해서 뒤로 가라고
한 거니 그때도 그냥 가만히 보고만 있었는데,
할머니가 거동이 불편하신 건지 되게
천천히 뒤로 자리를 옮기셨거든요.
아저씨는 또 화내시면서 신호 떨어진다고
빨리빨리 좀 옮기시라고 하셨고 할머니가
미처 자리를 다 옮기시기 전에 신호가
바뀌었고 차가 급출발을 했어요.
할머니가 중심을 못 잡고 휘청거리시다가
결국 넘어지셨는데 아저씨가 또 답답하신지
짜증을 내시면서 빨리 앉으시라고
했잖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할머니께 엄청 화를 내시는 거예요.
할머니는 버스를 탈 때부터
그때까지 계속 연신 죄송하다고
계속 사과하시는데 왠지 울컥하고 제가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할머니가 자리 옮길 때 일어나서
도와드렸어야 하는데 보고만 있다가
그제야 제가 일어나서 할머니 괜찮으세요?
하면서 잡아드렸고 그걸 본 언니가
폭발한 건지 기사 아저씨께 화를 냈어요.
언니가 평소에도 불의를 못 참는 편이고
그런 면에서 엄청 욱하는 게 심해요.
여기서부턴 그냥 대화체로
기억나는 대로 쓸게요
"아저씨 꼭 그렇게 소리 지르고
화를 내셔야 돼요? 할머니가 일부러
그러신 것도 아니잖아요."
"신호가 떨어지면 뒤차도 있는데
기다려 줄 수가 없으니까 그렇지!"
"그게 아니라 꼭 그렇게까지
말씀하셔야겠냐고 묻는 거예요."
"내가 뭘 어떻게 말했는데!!"
할머니는 저한테 고맙다고 하시고
언니한테도 그만하라고 버스기사
아저씨께도 계속 죄송하다고ㅜㅜ
언니는 열받은 것 같지만 할머니가
자리에 앉으시는 걸 보고 그냥 더 이상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저는 평소에 성격이 소심해서 언니처럼
저렇게 못하고 그냥 지켜보고 있었고요.
근데 버스기사 아저씨의 구시렁거리는
소리는 멈추지 않았고, 그 구시렁거리는
내용은 주로 언니가 버릇이 없다는
말들이었어요.
언니도 듣고 있는 거 같았지만
못 들은척하는 건지 무시하는 건지 휴대폰만
보고 있었는데, 아저씨가 부모도 없냐는
식으로 어떻게 아빠뻘 되는 사람한테
고개를 똑바로 들고 버릇없이 하냐고 했었나
암튼 그런 식으로 혼잣말을 하셨는데
언니가 거기서 또다시 터졌어요.
"저희 부모님 멀쩡히 계시는데요?"
"나도 너만 한 딸이 있어. 자식뻘 되는 애한테
그런 말 들으면 기분이 좋겠어? 내가 너네
부모보다 나이가 많았으면 많았지!
어? 적지는 않을 건데! "
"저희 부모님은 저한테 항상 약자를 보호하고
어른을 공경하라고 가르치셨는데요.
그리고 아저씨도 할머니께는 자식 뻘이 쉴 텐데,
할머니 기분은 어떻겠어요."
"뭐?"
언니 말에 아저씨가 되게 살벌하게
한대 칠 기세로 "뭐?" 하고 되물으셨는데
저는 요즘 세상도 하도 흉흉하고 언니가
걱정되기도 하고 해서 언니 팔 잡으면서
조그맣게 그만하라고 말렸어요.
할머니께서도 언니한테 괜찮으니까
그만하라고 되게 곤란하신 표정으로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계속 말렸어요.
언니랑 아저씨 둘 다 그 뒤로 별말 안 했고
할머니가 먼저 내리시고 그 뒤 몇 정거장
더 가서 저희도 내렸는데 언니가 내리기 전에
버릇없이 군 건 죄송하다고 꾸벅하고
내렸고 아저씨는 대답 안 하셨어요.
그러고 나서 집에 왔고 언니가 평소랑
다름없길래 그냥 괜찮은 줄 알았는데,
밤에 폰으로 페북 보다가 웃긴 동영상
언니 보여주려고 언니 방에 들어갔거든요.
언니는 페북을 안 해서, 같이 보려고.
근데 문을 열었는데 불 꺼져 있고
언니가 침대에 엎드려있는데 처음엔
자나 했는데 언니가 숨죽여서
울고 있는 거예요.
그 어두운 방에서 얼굴 배게 파묻고
있는데도 우는게 보일 만큼 소리는
안 나지만 서럽게 우는 거 같았어요.
낮에 일 때문에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나는 건지, 아니면 아까 그 할머니가 연신
죄송하다 하시는 모습이 자꾸 눈에 밟히는 건지..
다른 일이 있어서 우는 걸 수도 있는데
그냥 언니가 아까 일 때문에 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계속 그래서 그냥 문 닫고
다시 제방으로 왔거든요.
그리고 오늘 아침에 보니까 언니가
또 평소랑 똑같이 아무렇지 않아서 눈 부은 거
그냥 모른 척했는데 언니가 왜 그렇게까지
서럽게 운건 지 자꾸 마음에 걸려요.
어제 일은 솔직히 언니가 과했던 건지,
옳았던 건지 잘 분간이 안 가요.
왜냐면 저는 할머니 할아버지 일이면
항상 엄청 과민하게 반응해왔으니까
어제도 저희가 그랬던 걸지도 몰라요.
남들이 볼 땐 우리가 과민반응해서
아저씨가 할머니께 화낼만한 상황이었는데
괜히 기사 아저씨께 버릇없이 굴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는 거고..
사람마다 선의 기준은 다르니까..
그래도 저는 평소에
언니가 멋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어제 일 뿐만이 아니라 항상 불의를
보면 겁 많은 저랑 다르게 화내고 바른말하고.
사실 걱정도 돼요. 요즘엔 무서운 사람들도
많고 세상이 흉흉하니 언니가 옳은 말을
했다고 해서 좋게 보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거고,
다혈질인 사람한테 뭐라고 따지고
들었다가 큰일을 당할까 봐.
그래도 평소 이런 언니 성격 덕에
되게 자랑스러운 에피소드도 엄청 많아서
우리 언닌 이러이렇다 항상 자랑하고
다녔는데.. 그리고 자기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선 인정하고
사과하는 모습도 너무너무 멋있고.
뭐 결론은 없어요
언니가 항상 되게 단단하고
그런 사람인 줄 알았는데
우는 거 보니 심란해서요ㅠ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베플
버스 아저씨 쩌네
지는 할머니한테 호래자식 마냥 굴어놓고
남보고 뭐라 하는 클래스... 오진 다 오져
베플
요즘은 버스 안에 cctv 설치
돼있을 텐데 그거 불친절 기사
신고해버리세요.
그 할머니 분이 가만 계셔서 그렇지
할머니 버스 안에서 넘어지셨다면 그
할머니가 크게 다칠 수도 있었던 부분이네요.
어쨌든, 언니가 용감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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