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통, 촉진제, 분만 흡착기 출산후기 - 네이트판 레전드 임신부 썰
임신 후부터 네이버이며 네이트며
열심히 출산 후기를 찾아보던 여자입니다.
읽으면서 같이 울고 웃고 했던
그래서 저도 꼭 출산 후기를
쓰리라 다짐했었죠.
나는 더 정확하고 생생한 기억을
더듬어 쓰리라고 말이에요.
거두절미하고 출발~!
초산 / 무통 o / 관장 x / 제모 x
여아 / 몸무게 3.2kg / 머리둘레 34cm
37주가 지나고 나서는 아기가
예정일보다 좀 더 빨리 나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가진통도 전혀 안 느껴지고 예정일은
다가오는데 괜히 마음만 불안불안.
예정일 5일 전에 드디어 이슬이 보였다.
하지만 병원에서 이슬은 출산 1-2주 전에도
보일 수 있는 거라며 출산에서 중요한 건
'주기적으로 오는 진통'이랬다.
이슬이 비친 다음 날 새벽 4시 50분,
사르르 배가 아픈 기분에 잠에서 깼다.
드디어 간 진통이 시작된 것이었다.
요가 선생님이 알려주신 개구리 자세,
합장합족, 골반 돌리기, 비둘기 자세 등을
취하며 빨리 긴 진통이 걸리기만 기다렸다.
나는 친정엄마도 짧은 진통으로 순산했고,
워낙 기초체력도 튼튼했고, 친구들도 왠지
넌 애 잘 낳을 것 같다고 했고, 담당 원장님도
요즘엔 무통이 발달돼서 전부 웃으면서
애를 낳는다고 항상 날 안심시켰기에
출산에 대한 두려움은 거의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매일 순산하는 이미지트레이닝을
해온 터라 두려움이 없는 건 좋았지만
출산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했던 건
정말 대단한 착각이었다.
별 주기 없는 진통이 계속되고 많이
움직여야 한다는 남편의 말에 3-4시간 동안
땀 흘리며 동네를 걸었다.
밤 8시쯤 진통이 꽤 자주 오는 것 같아서
진통시간을 노트에 적다가 결국 진통 어플을
다운로드해 간격을 체크했다.
평균 진통 주기는 5분.
그런데 진통이 죽을만큼 아프지 않다.
일찍 병원에 가서 민망하게 퇴짜 맞은
산모 이야기를 많이 읽었기에 못 걸을 정도로
아프면 병원에 가기로 결심했다.
밤 10시. 드라마를 보면서
진통 체크를 했더니 2분 30초.
11시 30분. 진통이 꽤 세지긴 했지만
정말 이게 맞나? 하는 의구심에 참다가 퇴짜를
맞을지언정 일단 병원에 가자는 남편의
말에 병원으로 갔다.
내진 결과는 자궁문 1센티 열림.
아.. 집에 돌아가야 하겠구나 했는데
자궁문은 1센티밖에 안 열렸지만 자궁입구가
많이 얇아진 상태라고 진통을 체크해보고
입원 여부를 결정하자고 했다.
진통기를 배에 차고 20분쯤
기다렸는데 간호사가 들어와 5분 간격으로
진통이 있다고 입원을 하란다.
출산을 글로 배운 탓에 간호사에게
"1센티밖에 안 열렸는데 입원해요?"라고
되물었더니, 자궁문 열린 정도와 자궁입구의
두께, 진통 간격 이렇게 세 가지를 전부 보고
입원을 결정하는 거란다.
나는 자궁문이 많이 열리진 않았지만
자궁입구가 거의 얇아졌고 진통 간격이
5분 이내라서 입원하는 거라며 집에서 꽤 참고
오신 것 같다고 하는 간호사의 말에 뭔가 뿌듯했다.
수액을 맞으면서 남편과 수다를
떨고 있는데 진통이 약할 때 아무 통관을
꼽자고 했고, 마취하는 주사가 꽤 따끔했다.
나는 무통주사가 수액처럼 팔에 링거 형태로
맞는 줄 알았는데 아주 얇은 관을
등에 삽입하는 거였다.
등에 삽입한 관을 한 쪽
어깨로 주사액이 들어갈 수 있게 빼놓는다.
무통을 등에 맞으면서 어떻게 똑바로
누워있을 수 있는지에 대한 궁금점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밤 1시쯤 내진을 해보더니
2.5센티가 열렸단다.
3센티 이상 돼야 무통을 놔줄 수 있지만
조금 이따 힘주기를 하려면 잠을 좀 자두는 게
낫겠다며 무통주사를 조금 놔준다고 했다.
등 쪽으로 흐르는 차가운 약의 기운을
느끼면서 과연 나는 무통 빨 이 얼마나
잘 받을까 기대했다.
결과는 아주 만족.
진통기에 7-80 정도로 찍혀도 전혀 아프지 않다.
(표시되는 숫자는 0-99다. 진통이
셀수록 숫자가 올라감.)
잠은커녕 설레는 맘으로 남편하고
핸드폰 게임을 하면서 두 시간을 보내고
나니 점점 무통 빨 이 사그라들었다.
예전과 달라진 진통 세기에 살짝 겁이 났다.
간호사가 들어오고 내진 한 결과
진행이 전혀 안됐다고 촉진제를 달았다.
촉진제를 맞고 진통이 강해진다는 글이
많았던 생각에 덜덜 떨며 촉진제를
꼭 맞아야 하냐고 했는데
지금은 좀 제기다려보고 계속
진행이 안되면 그때 놓겠다고 체력 보충을
위해 잠을 자라며 무통을 다시 조금 놔주었다.
벌써 새벽 3시가 다 되었고 남편도 피곤해했다.
아까 무통 약의 기운이 한 시간 정도
밖에 안된다는 걸 알았기에 이번엔
억지로 잠을 청했다.
어느 정도 잤을까
극심한 진통으로 잠에서 깼다.
그리고 또 내진을 해 본 결과 역시나 진행 안됨.
이제 무통은 안되겠다고
촉진제를 조금만 맞자고 했다.
촉진제 맞고 효과가 있으면
무통을 같이 놔준단다.
촉진제의 효과는 위대했다.
지금까지 겪었던 진통은 아기 수준이었구나
앞으로가 진짜구나 싶어서 덜컥 겁이 났다.
머릿속은 온통 '숨을 쉬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고 미친 듯이 호흡하기 시작했다.
남편과 함께 박자에 맞춰 들이쉬고
내쉬고를 하는데 간호사가 들어와 과호흡을
하면 말초신경으로 산소가 전달되지 않아
손 발이 저리고 어지러울 수 있다며 지금은
이렇게 호흡하지 않아도 된단다.
그렇게 진통을 겪는데 정말 말로 표현이
안되는 고통.. 너무 아파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나오고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난 정말 악쓰고 소리 지르면서 낳기
싫었기에 최대한 참았지만 으으윽하는
신음까지 참을 수는 없었다.
남편에게 진행 상태 보고 무통
놔준다 했는데 왜 내 진하러 오지
않냐고 물어보라 했다.
내 진하러 들어온 간호사 언니는
친절한지만 정말 단호하게 무통주사에
의존하지 말라고 했다.
아기가 힘을 쓰고 나오려고 하기 때문에
아픈 거고, 아픔을 느껴서 힘을 줘야
아기가 내려올 수 있는데 계속 무통 약을 맞으면
다리에 힘이 풀리고 진통을 느낄 수가 없어
내려오는 아기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단다.
그럼 진통 시간만 더 길어질 뿐이라고
내진 결과 지금은 다행히 진행이 많이
되었다며 무통을 맞고 조금만 버텨보라 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무통을 맞아도 효과가
크지 않을 거라는 무시무시한 말을 하고 떠났다.
그 무시무시한 말은 사실이었다.
진통 간격은 점점 짧아지고 분명
아까보다 참을만 해지긴 했지만 무통 약을
넣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진통이 왔다.
정신없이 진통을 겪고 있는데 친정엄마 등장
병원 오기 전에는 굳이 오겠다는 엄마에게 아기
낳고 나면 오라고 엄마 없어도 된다고 했는데
막상 진통을 겪다 보니 엄마 생각이 간절했다.
엄마를 보자마자 펑펑 울었다.
잘하고 있어, 힘내 우리 딸 하며 응원해주는
엄마가 있으니 나도 남편도 힘이 났다.
하지만 감동도 잠시뿐.
오전 8시. 이제 본격적인
힘주기에 들어가자고 한다.
힘주는 자세와 방법을 알려주는데 처음에는
잘 안되다가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힘이 들어갔다.
나는 당연히 아기 나오는 쪽으로 힘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백 퍼센트
엉덩이와 항문에 힘을 주면 되는 거였다.
관장을 안 해서 불안한 마음이
들어 간호사에게 말했더니
내진을 하면 항문 쪽으로 변이
있는 지도 느껴진단다.
지금 전혀 없고, 혹시나 변이 나온다고
해도 보호자는 볼 수 없게 할 것이고, 후처리도
확실하게 해줄 테니 그런 걱정은 전혀 안 해도 된단다.
안심하고 미친 듯이 항문에 힘을 줬다.
분만실에서 간호사의 말은 정말 큰 힘이 된다.
막판에는 거의 신으로 보인다.
그러니 의사선생님은 어떻겠나
의사선생님이 들어올 때마다 후광이 장난 아니었다.
간호사 언니들은 산모가 의지도 좋고
힘도 좋고 초산치고는 진행도 빠르다며
폭풍 칭찬을 마구 해주었다.
오전 9시 30분. 그렇게 힘을 주고 주고
또 주고를 반복.. 아기가 아직
골반에 있다고 했다.
제일 좁은 마지막
골반만 통과하면 끝이란다.
여기까진 아주 잘 내려왔다고 초산모의 경우
빠르면 40분 최대 3시간 정도 남았다고 한다.
한 시간 안에 끝내자는 생각이 들었다.
진통 간격은 체감상 30초-1분.
시계를 안 봐서 정확히는 모르겠다.
진통이 오자마자 힘을 주는 게 아니고
진통이 와도 참고 기다렸다가 진통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힘을 주는 거란다.
너무 아파서 진통이 오자마자 힘을
주려고 하면 어김없이 혼났다.
그렇게 하면 기운만 빠지고
아기 내려오는 데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단다.
보호자랑 함께 힘주기 30분,
간호사와 힘주기 20분.
이게 무한 반복됐다.
가족분만실이었지만 간호사와 힘줄 때는
내진을 하기 때문에 보호자는 전부 밖에
나가있는다.
오전 11시 병원에 입원한 지
12시간이 다 됐다.
병원에서 다섯 시간 안에 아기를
낳을 수 있을 거란 기대는 물 건너 간 지 오래다.
힘주기는 끝날 기미가 안 보였다.
머릿속은 온통 개똥이(태명) 생각뿐이었다.
사람들이 왜 진통을 하다가 수술 얘기를
꺼내는지 이해도 됐다.
손가락 반마다 만 더 내려오면 된다는데
같은 자리에서 계속 진행이 안되는 상태
간호사 언니들도 잘하고 있다고 칭찬만 할 뿐
정작 듣고 싶은 "이제 조금 더 더 더,
네 다 됐어요!!" 이런 말은 없었다.
간호사 언니들은 아기를 밀어주겠다고
배를 미친 듯이 눌러댔고, 의사선생님도 벌써
두 번이나 다녀갔고 밖에는 이미
분만세트가 준비되어 있었다.
이러다가 수술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
"혹시 이러다가 수술하는 건 아니죠?" 하고
물었더니, 아기가 많이 내려와 있어서
수술이 더 위험하단다.
오후 1시 지칠 법도 한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나의 모습에 엄마도
남편도 다 감동했다.
남편은 계속 울고 강한
우리 엄마도 결국 목이 메이더라.
간호사가 내 진하는 손가락이 아플 정도라며
나보고 참 대단하단다.
정자세로 힘주기 옆으로 누워 힘주기
계속하다 보니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됐고
쉬지 않는 엄마의 부채질이 정말 고마웠다.
계속된 힘주기에 결국 구토까지 했다.
얼굴은 열꽃으로 시뻘개졌고 목까지
실핏줄이 다 터졌다.
그래도 우리 개똥이는 나올 기미가 안 보였다.
이때 들어온 의사선생님이 분만 흡착기를
쓰겠다고 한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네!!"라고
대답했고 이제 드디어 끝나겠구나 싶었다.
무언가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드디어 분만 침대로 변신했다.
분만 침대 변신은 별거 없었다.
침대가 이등분이 되는데 하체 부분을 받치고
있던 걸 빼버리고 다리는 양옆으로 걸치고
엉덩이는 공중에 떠있는 자세가 된다.
앞에 앉은 의사선생님이 소독을 하고
마취를 하는 느낌이 든다.
아프진 않은데 주사를 놓는 따끔거림이 느껴졌다.
회음부를 절개하고 꿰맬 때 마취를 해서
안 아프다고 한 거였나 보다.
간호사 언니 두 명이 배를 누를 준비를
하고 있고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진통이 걸리길 기다렸다.
진통이 점점 세지고 간호사 언니의
호흡에 맞춰 힘을 빡!! 한 번 더 윽!!!!!!
아까와는 사뭇 다른 배 노름에 손에 힘이
빠지려 했지만 흡착기를 잘못 쓰거나 오래 하면
안 좋다는 생각에 정말 남은 힘을
다 끌어모아 힘을 줬다.
밑의로 따뜻한 게 주륵 흐르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들고 봤더니
탯줄이 보이고 아기 엉덩이가 보였다.
그렇게 진통 14시간 만에 오후 1:48
우리 개똥이가 세상 빛을 보게 되었다.
간호사 언니가 바로 남편을 불렀고
남편은 아기를 볼 새도 없이 나에게
달려와 날 안고 펑펑 울었다.
어서 탯줄부터 자르라는 간호사 말에
허둥지둥 가위질을 하고 다시 나를 안아주었다.
아기보다 날 먼저 챙기는 남편이
고마워서 하염없이 눈물이 났고 아기
울음소리에 또 눈물이 났다.
후처 치하는데 아무 느낌 없다더니 난 아팠다.
그리고 잠깐 꿰매는 줄 알았는데
꽤 오래 꿰매더라. 대충 닦여서 천으로
감싼 아기를 안겨주는데 얼떨떨했다.
정말 내 아기가 맞나? 이게 꿈인가 생산가.
아기는 씻겨서 한 시간 후에 다시 데려온다고 하고
나갔고 태반을 빼느라 배를 누르는데 이것도 아팠다.
아기만 낳으면 모든 고통이
사라진다더니 사람마다 다른 거였다.
물론 진통에 하고는 비교할 게 안된다.
진통이 어떻게 아픈 지에 대한 설명을
남편에게 밤 새 해줬지만 결국 이해하지 못했다
아, 그리고 똥구멍에 수박 낀 느낌이라는
표현은 누가 처음 사용했는지 모르겠지만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다.
간호사는 엄마도 힘 잘 줬고,
아기 머리가 큰 편도 아니고 몸무게도
초음파 상보다 200그램이나 적은데
왜 애가 안 나왔는지 의문 이랬다.
골반이 잘 안 벌어지는
내 체형 때문일 거라는 추측만 있었다.
5-6개월 때 아쿠아로빅, 6개월-출산 직전까지
산모 요가교실을 꾸준히 다녔지만 결국
골반이 안 벌어지는
나는 임신 초기부터 일을 쉬게 됐었는데
아마 운동을 그렇게 다녀도 집에서 퍼져있는
시간이 길었기에 그랬던 것 같다.
남편은 임신 중보다 출산 후에
나에게 더 잘해준다.
임신하고 있을 때는 힘든 줄 몰랐단다.
14시간 동안 지켜보고 있으니까
엄마는 참 위대하다며 3년 동안 봐온
내가 다른 사람 같았단다.
아기 있는 선배들이 임신한 와이프한테
정말 잘해주라고 했을 때 귓등으로
들었던 게 후회된단다.
둘째는 못 낳겠다고
했더니 남편도 흔쾌히 동의했다.
이렇게 힘든 시간 지켜보는 것도
고통이라며 두 번은 못 보겠단다 ㅋㅋ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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